투탕카멘의 저주
link  이동훈   2021-04-22

1922년 11월,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Tutankhamun) 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무덤 내부에서는
투탕카멘의 미라가 잠든 황금관, 왕의 등신상, 미라를 덮은 황금 마스크, 황금왕좌 등이 잇달아 발견되었다.
당시 이집트 고고학 관계자 사이에서는 "더 이상 도굴당하지 않은 왕의 무덤은 없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도굴 문제가
심각했던 터라, 이 발견의 파장이 굉장했다.

그런데 이 세기의 대발견은 무서운 저주의 서막이기도 했다. 관의 뚜껑에 '왕의 휴식을 방해하는 자, 죽음을 맞으리라' 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왕의 이름을 알리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 는 글귀도 함께 쓰여 있다.
하지만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고 알려진 소년왕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떠돌면서 발굴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흉흉한 소문이 만들어졌다.

거기에다 그 저주가 사실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에 관여한 사람들이 잇달아 목숨을 잃었다.
첫번째 희생자는 무덤을 발굴 조사를 후원했던 영국의 금융인이자 대부호 카나본경 이었다.
그는 발굴 착수 6개월 후인 1923년 4월5일, 면도하다 생긴 상처 부위를 모기에게 물린 뒤 패혈증으로 고열에 시달리다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카나본 경의 상처 부위가 투탕카멘 미라의 얼굴에 난 상처와 똑같은 부위였다니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미국의 고고학자이자 건축가였던 아서 메이스(Arthur Mace)가 왕의 무덤에서 작업하던 중 갑자기 추락사한다.
카나본 경의 부고를 접하고 이집트를 방문한, 카나본의 친구이자 미국의 철도업계 거물이었던 제이슨 제이 굴드도
투탕카멘의 무덤을 견학한 다음 날 원인 모를 고열로 사망한다.
그밖에도 희생자가 안둘이 아니었다. 투탕카멘의 엑스레이를 최초로 촬영한 영국인 기사 아치볼드 더글러스 리드,
관을 촬영한 카메라맨 프랭크 로리등 미라 조사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이 잇달아 미심쩍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고고학자 에블린 화이트는 '파라오의 저주에 쓰러졌다'라는 의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또한 카나본 경의 부인 알미나가 죽는 등, 카나본 경이 죽고서 6년에 걸쳐 무려 22명의 유적 발굴 관계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유적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의 잇따른 의문사를 매스컴이 '파라오의 저주'로 명명하자,세상사람들도 뜨거운 관심을
가지면서 점차 저주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 한편 죽음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도 시도했다.
죽음의 원인으로는 고대의 바이러스설이 가장 주목을 끌었다. 1962년, 카이로 대학교의 에제딘 타하 박사는
고고학자와 박물관 학회원이 잘 걸리는 특수한 질병을 발견한다. 그는 왕릉 발굴 관계자의 죽음은 미라의 체내와
밀폐된 석실에 서식하는 '흑국균'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그밖에도 고대 이집트의 신관이 왕릉 내에 장치해둔 독약 때문이라는 설, 독사에 물렸다는 설, 말라리아설 등이
등장했고, 급기야 방사선으로 인한 장애설, 우주인 관련설과 같이 기상천외한 갖가지 설이 등장해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어떤 주장도 결정타가 되지 못했다. 병원균의 경우 왕릉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의 죽음을 설명하지 못하며,
독사설과 말라리아설도 사체에 흔적이 없어 설득력이 없다.
첫번째 변사 사건으로부터 9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유적 발굴에 관여한 사람들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있다. 과학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파라오의 저주' 설은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의 일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미스터리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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